교육과 인문지성의 산실, 서원

교육과 인문지성의 산실, 서원

 

돈암서원 보물 제1569호 논산 돈암서원용도당 論山 遯岩書院 凝道堂

 

교육과 인문지성의 산실, 서원 조선시대의 서원은 유교문화와 교육을 상징하는 곳으로 알려진다. 서원은 한국 지성문화의 요람으로 400여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며 성리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각 지역의 문화, 그리고 지성인들의 요람이자 주요 활동장으로 기능했던 곳이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유교문화와 교육을 상징하는 곳으로 알려진다. 서원은 한국 지성문화의 요람으로 400여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며 성리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각 지역의 문화, 그리고 지성인들의 요람이자 주요 활동장으로 기능했던 곳이다.

 

01. 사적 제260호 안동 병산서원 安東 屛山書院 02. 사적 제170호 안동 도산서원 安東 陶山書院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서원은 강학과 학문연구(藏修), 선현제향의 기능을 지니면서, 성리학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지역의 교육, 문화, 지성사의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지성과 인문학의 전당이었다. 이러한 한국 서원문화의 전통과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에 ‘한국의 서원’ 9개소(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들 한국의 9개 서원은 연속 유산으로서, 16세기 중반 서원 제도의 도입으로부터 시작하여 한국사회에 서원이 정착하고 발전하는 과정의 역사와 건축적 특징을 통합적이고 연속적으로 증명하는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들 한국의 9개 서원은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과 다른 한국만의 독특한 특성을 잘 보존·정립한 사례이자,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되어 지역적인 특색을 가지며 꽃피운 중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03. 사적 제154호 경주 옥산서원 慶州 玉山書院    04. 사적 제499호 함양 남계서원 咸陽 溪書院

05. 사적 제166호 정읍 무성서원 井邑 武城書院

 

강학과 교육의 전당, 서원

조선시대 서원은 교육과 한국지성문화의 요람이었다. 한국의 서원은 저명 성리학자를 제향하는 곳이면서, 각 지방의 고급 인재들이 수시로 출입하고 접촉, 교류했던 공간이자 상징적 기구였다. 특히 한국 서원의 진면목은 자신들이 존경하고 멘토로 삼는 스승의 연고지에 후학과 문인들이 건립하고, 제향과 함께 그 정신을 이어간 것에서 잘 나타난다. 서원은 일방적인 지식 전수가 아닌 강론과 학문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고, 여론과 공론의 결집처로서 지역 지성사의 거점이 되어 문화적·사회적 활동은 물론 정치적 활동까지 전개하였다.

 

서원에 제향된 인물의 성격은 서원의 다른 어느 것보다 우선한다. 제향인물의 학문이나 사회적 지위와 함께 이를 선양, 추앙하는 세력이 있었을 때 서원은 건립된다. 서원이 제향과 교육·강학의 기능을 가진 점에서는 관학인 향교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서원은 제향 대상이 공자와 그의 제자가 아닌 해당 지역과 연고가 있는 선현(先賢) 이라는 점, 설립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사림이라는 점, 설립의 동기와 배경이 과거 준비를 위한 곳이 아니라 학문하고 수양하는 곳이라는 점, 그리고 설립된 장소가 중앙 정부의 직접적인 관여를 받는 군현의 소재지나 그 주변이 아니고,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는 점에서 향교와는 그 성격과 기반이 크게 다르다.

 

서원 건립이 왜 그 시기에, 그곳에, 그리고 어떤 주체세력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답은 매우 잘 드러난다. 대체로 서원건립의 유서와 기반은 지역에 연고를 가지고 후학의 양성이나 학행으로 모범을 보였던 인물의 유서가 있던 곳이었다. 특히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9개 서원의 경우 조선 성리학 발전을 주도하고 대표하는 인물들을 제향하는 곳이면서 그들의 학맥이 전승, 활성화된 공간이었다.

 

그런가하면 한국의 서원은 ‘한국유교문화의 자료관, 박물관’으로 일컬어질 만큼 다양하고 특징적인 유형, 무형의 자료들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와 교육 전통, 제향, 건축, 경관, 기록유산 등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은 바로 이러한 유교, 선비문화의 다양성과 특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원은 지연과 학연별로 한국 유교문화의 다양성과 지역성이 집약된 문화유산이자, 자료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06. 전형적인 경사지 서원의 일렬건축배치를 엿볼 수 있는 도동서원의 건축배치도

이미지. 출처 :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 유식공간 :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서원에서 공부해야 하는 선비들이 서원 밖이 아닌 서원 안에서 여유롭게 산수 유람을 즐길 수 있도록 서원 안에 지어진 정자와 누각이 있는 공간

 

지연과 학연, 공론의 요람

한국 서원이 지닌 가장 특별한 성격으로 지목되는 것은 서원이 사림의 공론을 형성하고, 사족들의 연명상소를 발의하거나 여론을 수렴하는 취회소로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즉 향촌사족 간 결속의 매개체로 지연과 학맥, 때로는 정파의 연대와 교류의 거점이었다. 서원은 지역별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발생하거나, 학술적으로 논란이 된 사안, 혹은 향촌사회에서 제기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통문이라는 의사 소통의 방식을 통해 향촌유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지역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론의 형성과 사회적 역할이 바로 중국이나 일본의 서원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한국 서원의 특성 중 하나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론 형성과 수렴에 있어 서원은 수합처이자 형성의 주체로서 커다란 기능을 했다. 사림의 집단 활동은 서원의 네트워크에 의해 구체화되었으며, 통문이 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매개였다. 또 통문을 통해 수렴, 형성된 공론을 국가와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도 서원의 기능 중 하나였다. 연명상소로, 때로는 격렬한 학문토론으로, 혹은 의병의 격문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서원은 지방의 사론을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서원의 공간 구성은 제향, 강학, 교류와 회합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이는 다른 나라의 서원들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성격으로 강당, 사우, 누각 등의 건축물들이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오랜 역사와 정형화의 과정도 중요하며 탁월한 사례라는 점이 인정을 받았다. 특히 서원 강당이라든가, 강당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역할을 하였던 특별한 공간을 갖춘 병산서원 만대루, 남계서원의 풍영루, 필암서원의 확연루, 옥산서원의 무변루 등의 문루는 그 대표적인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07. 사적 제242호 장성 필암서원 長城 筆巖書院            08. 강세황 필 도산서원도 강세황 26.8cmx138cm 姜世晃 筆 陶山書院圖 영조 27년(1751)에 강세황이 도산서원의 실경을 그린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지성사의 전당, 그 기능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한국의 서원은 지연과 학연이 맺어준 교육과 지성의 장이었다. 서원은 지역별로 많은 사림을 양성하여 정계에 공급했고, 문화거점이자 지성사적 활동 공간으로, 여론과 공론의 ‘결집’, ‘소통’, ‘대변’의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정치 및 학술 논쟁과 지역간, 학맥(당론)간 네트워크 형성이라든가 강학(회), 소회, 창의 등을 통한 활동 등은 조선의 서원만이 지닌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인정받았다.

조선시대 서원 문화는 학문과 학자를 대우하며, 자기 수양의 정신자세 및 도의와 염치를 알고 도덕을 몸으로 실천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학문적 삶, 도덕적 실천의 삶을 상징한다. 서원문화에서 보여진 지성들의 개성과 자존심의 삶은 오히려 현대지성들이 귀감을 삼고 더욱 부러워해야 할 모범이라 할 만하다. 지성인의 핵심 덕목이라 할 지성사와 도덕적 실천, 어른스러움의 대명사였던 조선의 선비문화가 자랑스럽게, 그리고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정신사의 고급브랜드로, 미래 경쟁력으로 되살려졌으면 싶다.

출처 :  이해준 (공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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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