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배우는 평생의 가르침,가정교육

요람에서 배우는 평생의 가르침,가정교육

어떤 언표(言表)로 형용하건 가정은 인생의 안식처이자 인류의 온상(溫床)이다. 혈연을 기반으로 형성된 유교 전통 사회의 가정(家庭)은 현대적 의미의 가정과 상당히 다른 차원이 깃들어 있다. 핵가족이 아니라 대가족 이상의 가문(家門)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이상을 구현했다. 명문가(名門家)의 경우, 그 자긍심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정신적 유산은 한 사회를 인도하는 삶의 모델로 작용한다.


01.퇴계 이황 선생의 종가인 경상북도 기념물 퇴계종택 (退溪宗宅). 퇴계는 자녀뿐만 아니라 친인척의 자제까지 90명을 꼼꼼하게 챙길 만큼 가정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문화재청

교육의 뿌리, 가정

가문(이하 ‘가정’으로 표기)의 지위는 그 집안에서 인격이나 재능이 뛰어나 명성을 얻은 사람이 고위 관직으로 나아가는, 즉 개인의 능력을 중심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가학(家學) 사상을 기반으로 중시되기 시작했다. 가학은 가정의 풍조와 선조의 유풍을 통해 나타난다. 선조의 유풍 또는 조상의 뒤를 이은 혈통을 통해 후손의 성격이나 재능이 계승된다는 발상이다. 이런 가학은 가계(家系)나 가격(家格)을 탐구하는 족보학(族譜學)의 발달로 이어졌다. 나아가 『안씨가훈(顔氏家訓)』을 비롯해 제갈량(諸葛亮)·왕승건(王僧虔)의 『계자서(戒子書)』, 양춘(楊椿)의 『계자손(戒子孫)』 등 후세에 가족훈(家族訓)의 원형이 되는 교훈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선의 경우, 퇴계 이황이나 다산 정약용 등 대학자들의 편지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자식 훈계에서 가정교육의 의의를 엿볼 수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표현 하듯, 한 가정의 교육은 구성원 사이의 친밀과 화합을 강조하고 궁핍한 친척을 위한 도움을 권장하는 등 삶의 실제 내용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크게 보면 혼란한 세상에서 가정을 생존시키기 위한 처세훈이 핵심이다. 작게는 각 각의 가족 단위인 가정에서 자손이 번영하기를 바란다.

이런 교육은 어쩌면 그 목적이 단순하다. 그러나 의미는 심오하다. 가정의 조직을 유지하고 생업을 수행하며 제사를 중심으로 의례를 거행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를 수행 하고 가정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가사(家事)’ 가 필요하다. 가사는 가정이 지향하는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총칭한다. 친족의 화합을 도모하고 자손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며, 사업을 번영시키고, 재산을 관리하며, 가문의 의례를 봉행하는 일 등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가족은 자신의 본분에 맞는 일을 익히고 실제 이행해야 한다.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학행(學行)을 권장하고, 조상을 알고 제사를 받들며, 족보를 인지하면서 보학을 발전시키고, 친족 간 화목을 도모한다. 가사 가운데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일은 ‘가정의 화합 도모’이다. 가정교육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02.국가등록문화재 가족도(家族圖). 우리나라 최초로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활동을 했던 배운성의 대표작으로 한옥 마당에 군집한 대가족이 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는 모습을 담았다. ©문화재청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에서 배우는 것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정에서 자식교육은 유교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던 아동·청소년 훈육에 따라 이뤄졌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교육서인 『소학』의 가르침에 따라 수유기를 거쳐 영아 때는 발화(發話)와 배변(排便) 훈련을 했고, 유아기에는 문자와 간단한 생활규범을 획득하며, 아동기에는 성역할과 기본예절을 학습했다. 아동기 이후의 14~15세 청소년 무렵에는 오늘날 성년식(成年式)에 해당하는 관례(冠禮)를 올리고, 15세 무렵에 혼인(婚姻)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종가(宗家)의 자손들은 연령에 따라 성장하는 장소를 달리했다. 수유기인 1~2세 무렵에는 모친과 안채에 머물며 모친이나 유모(乳母)의 젖을 먹었다. 3세 무렵, 이유기를 거치면서 간단한 언어학습과 배변훈련을 하는 시기부터는 조모가 양육을 담당했다. 할머니 무릎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른 바 ‘무릎교육’을 통해 성장한다. 이 시기에는 남아와 여아를 구분하지 않고 양육했다.

5~6세 무렵, 사물을 구별하고 문자에 흥미를 가지는 연령이 되면 남아는 사랑채에 나가 부친이나 조부와 같이 기거하며 문자 교육을 포함한 선비로서의 삶의 자세를 익힌다. 여아의 경우, 5세가 되면 조모의 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 시기에는 모친에게 어린 동생이 태어나 양육하기 힘든 단계일 수도 있고 남아가 사랑채의 조부에게 교육받게 되듯, 여아는 안채의 주인인 조모에게 교육받기 위해 조모의 방으로 옮겨 글을 배웠다. 이후 흔히 말하는 ‘남녀 칠세부동석(男女七世不同席)’의 시기가 되면, 자식교육은 더욱 엄격해진다. 남아는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조부에게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초지식과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지식과 자질 그리고 역할에 관해 교육받았다.

여아는『내훈(內訓)』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성교육 과정에 의거해 집안일의 기본 기술을 익히고, 7세 이후에는 『효경』과 『논어』, 『계녀서』 등을 통달하게 된다. 15세 전후에 이르면,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를 치르고 혼인을 했다. 부모상을 당한 경우에는 3년상을 치러야 하는 만큼 관례나 혼례가 3년씩 늦어지곤 했다. 남성의 경우, 사대부로서 행세할 수 있는 학문과 예의범절 등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여성은 안채에서 남성에 버금가는 교양지식은 물론이고 상차리기, 다림질, 바느질 등을 익혔다.

03.국가민속문화재 강릉 선교장(江陵 船橋 莊).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으로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대가족이 함께 생활 할 수 있는 생활 공간으 로 구성돼 있다.   /   04.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 (丁若鏞 筆蹟 霞帔帖). 전남 강진 다산초당 유배시절 정약용이 두 아들 학연(學淵)과 학유(學遊)에게 전하고 픈 당부의 말을 적은 서 첩으로 몸가짐, 교우 및 친족관계, 학문하는 자세 등 자손에게 바라는 삶의 태도가 적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전통 가정교육의 현명한 응용을 고민해야 한다

가정에서 자식 교육의 방법은 다양하다. 그것은 자식의 성장 과정과 아동·청소년의 학습 원리를 충분히 고려해 설정되었다. 그 첫째가 ‘견문(見聞)’이다. 문자 그대로 ‘직접 보고 듣는 일’로 모범적 대상을 모방해 지각한 정보를 상황에 따라 인출하는 방법이다. 이는 가족 내 훌륭한 인물의 행동을 보고 들음으로써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일종의 자기학습법이다. 둘째, 아주 ‘엄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퇴계 이황은 2세 때 부친을 여의었기에 그런 탓도 있지만, 어머니의 교육이 매우 엄격했다. 퇴계의 모친은 수시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욕하기 쉽다. ‘과부가 어떻게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라고 의심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남보다 100배 더 공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비난을 면할 수 없다”라고 했다.

교육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손을 엄하게 교육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감정은 기본적으로 ‘자애(慈愛)’이기 때문에 엄한 교육은 일종의 역설이다. 자애의 다른 표현이다. 이외에도 부모가 직접 자식교육을 하지 않고 세대를 하나 건너뛰는 ‘격대(隔代)’, 다른 친족이나 외부의 선생을 모셔 자녀를 바꾸어 교육하는 ‘역자(易子)’, 타고난 자질을 고려하는 ‘인재시교(因才施敎)’, 지속적 ‘관심과 격려’, 포상을 통한 ‘동기 부여’ 등의 방법으로 교육했다.

시대가 바뀐 만큼 전통 가정교육은 상당한 해체를 겪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가정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 시켰다. 이제는 전통 자체의 고수가 아니라, 그것의 ‘응용’이 필요한 시대이다. 전통 가정교육이 지닌 원리나 방법의 현대적 차원을 고민해야 한다. 전통은 시대정신을 고려한 새로운 시각을 부여할 때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대안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다. 군주제 시대에 형성된 전통 가정교육을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과거에 강력한 전통이라고 하여 무조건 가치가 있다거나 현대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적 수용은 경계해야 한다. 보다 냉철한 성찰과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떻게 건강한 삶의 양식을 줄 수 있는지 비판적 수용이 요청된다. 출처/신창호(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평생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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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