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석조문화 석탑 3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軍威 持寶寺 三層石塔)

가질持, 보배寶자를 써서 보배를 간직한 절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던 세가지 보물(맷돌과 가마솥, 청동향)이 있어 지보사라 하였다고 한다.

불교 석조문화 석탑 3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軍威 持寶寺 三層石塔)

경북 군위군 군위읍 동북쪽에 해발 437m의 별로 높지 않은 선방산 산 중턱에 지보사(持寶寺)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지보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이다. 가질持, 보배寶자를 써서 보배를 간직한 절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던 세가지 보물(맷돌과 가마솥, 청동향)이 있어 지보사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시대부터 전해온 청동향로(선방산에서 나는 단청의 물감에 쓰이는 오색 흙을 꼽는경우도 있다)와 열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가마솥, 아무리 갈아도 닳지 않는 맷돌 등의 보물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고 하는 설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하는 설만 전할 뿐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얼마 전 새로 증축한 요사를 비롯하여 대웅전과 누각 등 10여 채의 건물이 있다. 현재 유물로는 삼층석탑과 1826년(조선 순조 26)에 제작된 현판 지보사 등촉계창설기, 1655년(효종 6) 제작된 헌답기(獻沓記)가 전해진다.

그 옛날 삼 보배는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새롭게 그 이름에 걸맞은 보배가 하나 있으니 바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삼층석탑이다. 1980년 9월 16일 보물 제682호로 지정되었다. 삼층석탑은 본래 산 너머 극락사란 절에 있었으나 이 절이 없어지는 바람에 읍내의 동부동 절골로 옮겨졌다가 다시 이곳 지보사로 옮겨왔다.

또 다른 유물은 19세기 건축물인 보화루(寶華樓)로 보존이 잘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지보사에 남아있는 또 다른 보물이라면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불이 전하여 지고 있다.

1999년 대웅전 해체 당시 나온 상량문에는 지보사의 지(持)가 땅(地)로 쓰여 있어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절터 자체가 보물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삼층석탑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다. 기단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고, 기둥 사이에는 무늬를 새겼는데, 아래층에는 사자 모양의 동물상을, 위층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넣었으며, 서쪽 면에 새겨져 있는 얼굴 셋에 팔이 여섯인 중상이 특이하다. 그린 듯 돌아가는 눈썹 아래 살풋 웃음이 담긴 눈과 오목한 입을 가진 갸름한 정면 얼굴과, 배꼽이 드러난 볼록한 배나 하늘로 쳐들어 손바닥에 구슬처럼 둥근 물건을 올려놓은 손의 살짝 꼬부린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 모습은 익살스럽기도 하다.

기단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모두 높아서 다소 우뚝해 보이기도 한다. 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판돌을 삽입하여 윗돌을 괴도록 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한 것으로, 밑면에 새겨둔 4단의 받침이 두꺼워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많이 깎여나가고 훼손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 조각 수법이 화려하고 외양이 단정한 고려 전기의 우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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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