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통신사, 농정개혁가 율정 박서생

일본에 다녀온 후 수차(水車, 물레방아) 개발을 제안해, 조선의 농사 기술혁신에 기여했다.

조선 최초의 통신사, 농정개혁가 율정 박서생

율정 박서생 (栗亭 朴瑞生)은 조선 최초의 통신사로 농정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본에 다녀온 후 수차(水車, 물레방아) 개발을 제안해, 조선의 농사 기술혁신에 기여했다.


1401년(태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우정언에 제수되었다. 박서생은 이후 응교, 집의 등 주로 언관직에 종사하였다. 특히 1420년(세종 2) 집의로 재직할 당시 상왕인 태종의 행차를 막고자 언론을 펼쳤다가 상주로 유배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공조참의, 병조참의, 집현전 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이다. 통신사란 서로 신뢰가 통하는 사절단이란 의미다. 박분(朴賁)을 정사(正使, 사신의 우두머리)로 한 사절단이었다. 하지만 박분이 병이 나면서 임무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왔다. 그 뒤 1428년(세종 10)에 다시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해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해 12월 귀국했다. 역사에서는 이때의 사절단을 조선 최초의 통신사로 평가하고 있다. 당시 통신사의 정사가 바로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 당시 나이 58세였다. 박서생의 일본 생활은 봉사일본유감(奉使日本有感)이라는 시에서 엿볼 수 있다.

一飯聊申一祝辭 끼니마다 올리는 한마디 축사
君恩片重遠遊時 임금님 은혜는 멀리서 놀 때 더욱 무겁구나
盤飱日日多兼味 반찬은 날마다 많고 맛이 좋으며
尊酒時時滿大巵 술도 때마다 술잔에 가득하구나
異卉幽花隨處好 이상한 풀 그윽한 꽃 도처에 가득하고
回山曲水到頭奇 두른 산 굽은 물 닿는 곳마다 기이하다.
不因奉使來東域) 사신으로 명 받아 동쪽 나라 안 왔다면
天下奇觀總不志 천하의 기이한 볼거리 통 모를 뻔했네   <동문선>(東文選) 17권

이때 수차(水車, 물레방아)의 이점과 그 도입을 건의해 농사 기술의 혁신을 가져왔다. 아울러 그가 보고한 일본의 정세와 왜적의 동태는 이후 조선이 일본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 화폐사용을 통한 시장경제 활성화를 주도하고, 교량 건설을 통해 물류의 자유로운 이동을 권장하는 등 실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율정의 선구자적인 발상은 그의 스승인 야은 길재의 영향이 크다. 당시 야은은 제자들에게 실천적 성리학을 강조했다. 그러한 스승의 가르침이 율정의 실용 정치의 기반이 된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야은의 수제자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차도 김홍도 (미공개 작품이다)


                            낙동강 낙단보 (수차의 모형이 있는 통신사공원이다)


만년에 구미시 도량동 율리마을(밤실이라고도 함)로 돌아와 밤나무를 심어 율정(栗亭)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그의 묘소가 구미 밤실에 있는 것은 이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고향 의성의 옛집은 향교로 바치고 학문을 권장했다. 향리들로부터 칭송이 높아 1701년 의성군 비안현 관내 구천면 위성리의 구천서원에 향사 되었다. 정하묵이 찬한 사적비가 구미 금오산 기슭에 있으며, 채미정 아래 유석우가 찬한 기적비가 있다.

박서생은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714년(숙종 40)에 건립된 구천서원(龜川書院, 의성군 구천면 산구동에 소재)에 박의중(朴宜中), 이우(李瑀), 김효정(金孝貞) 등과 함께 배향되었다. 1898(고종 35)년에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박서생 사적비가 건립되었다. 비문에는 박서생의 학풍, 야은 길재와의 관계 등 박서생의 일생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모가 심한 편이다.

박서생을 역사에서 발굴해 낸 것은 이마무라 토모(今村 鞆1870~1943)라는 일본인이다. 충북, 강원경찰부장, 평양경찰서장과 조선총독부 원산부윤 등을 역임한 총독부 관리다. 경찰 업무와 관련 있는 한국의 대상을 조사 하는데서 출발하여 점차 개인적 취미와 연관 있는 대상을 조사하여 조선과 관련한 많은 책을 출판하였다. 1912년 조선사회고(朝鮮社会考) 출판, 1923년 조선의제 나염수필 비오무리테(朝鮮の俤・螺炎随筆 鼻を撫りて) 출판, 1930년 역사민속 조선만담 및 선의 조선, 한국 연안 선로 개시 전말(船の朝鮮 韓国沿岸航路開始顛末) 출판, 1933년 인삼신초(人蔘神草) 출판, 1934년 인삼사 출판, 1937년 선좌승타포구-조선풍속자료집설(扇左縄打毬匏―朝鮮風俗資料集説) 출판, 1939년 이조실록 풍속 관계 자료 촬료 출판, 1941년 고려 이전의 풍속관계촬요를 출판하였다.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거기에서 40여 차례 등장하는 박서생을 발견한다. 그리고 저서 역사민속 조선만담에 활안(活眼)의 신사(信使) 박서생이라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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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