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배를 떠나보내는 염원

마을 사람들은 띠배가 모든 액을 싣고 가기를, 용왕님의 보살핌 속에 고기가 가득 들기를 염원한다.

띠배를 떠나보내는 염원

서해 앞바다에 있는 위도의 대리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흘 마을 입구에 있는 당젯봉에 올라 제를 올린 후 먼바다로 띠배를 띄워 보내는 띠뱃놀이를 한다. 마을 사람들은 띠배가 모든 액을 싣고 가기를, 용왕님의 보살핌 속에 고기가 가득 들기를 염원한다.



전북 부안군 격포항에서 위도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정월에 부는 된바람이 파도를 일깨워 정기선이 결항하기 일쑤여서 정월 초사흘에 열리는 위도띠뱃놀이를 보기 위해서는 며칠 전부터 날씨를 확인하고 배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배에 몸을 싣고 보니 격포에서 위도로 가는 바다는 칠산바다이다. 조기를 거래하던 바다 시장 ‘파시’ 고기가 한창 잡힐 때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가 열리던 곳, 어부들의 소망이 담긴 바다이다. 칠산바다를 지켜주는 신은 개양할미로, 지금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수성당에 좌정하고 있다. 개양할미는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좌정한 곳이 위도 대리마을의 당집이고, 당집에 제를 올린 후 띠배를 띄워 보내는 것이 위도띠뱃놀이다. 그러니까 위도띠뱃놀이는 칠산바다를 지키는 개양할미에게 조기잡이 만선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체 제의이고, 띠배에 모든 액을 실어 보내면서 평안을 기원하는 서해안의 풍어제이다.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하여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다 공동체 제의가 되었다.

위도 파장금항에 내려 대리마을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우측에 우뚝 솟은 당젯봉에 당집이 있으니 위도 원당이다. 원당에는 원당부인, 본당부인, 옥저부인 등 여덟 분의 신령님이 그림으로 봉안되어 있다. 정월 초사흘에 마을의 제관이 원당에 올라 제물을 차리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이다. 원당 앞에서 바라보면 칠산바다가 발아래 펼쳐진다. 조기가 많을 때는 조기 울음소리가 가득했던 바다이지만, 지금은 조기 어장이 남쪽으로 옮겨가 과거의 영화는 전설로 남아 있다.

"동해 용왕 서해 용왕 남해 용왕 용왕님네

어쩌든지 많이 흠향하시고,

인자 다 벌이 잘해서 신빚 갚고 구빚 갚아

먹고 남고 쓰고 남게 다 해 주시라."

                     00.띠배를 떠나보내는 염원 01.떠나가는 채비를 하는 띠배

대리 주민들은 정월 초사흘에 원당에서 원당제를 올린다. 원당제는 제물을 진설하고 대리마을뿐만 아니라 위도 전체의 마을이 한 해 동안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축문을 읽으면서 시작된다.  화주(제의를 총괄하는 사람. )의 독축( 의례를 행하는 의미를 밝히고 신에게 어떤 사실을 고하고 축원을 드리는 글을 읽는 행위.)이 끝나면 무당이 악사의 징과 장구 장단에 맞춰 굿을 올린다. 성주굿, 산신굿, 손님굿, 지신굿, 서낭굿, 깃굿, 문지기굿으로 이어지는 원당굿은 호남 특유의 장단에 맞춰 무가를 부르고 마을이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소지를 중간중간 올린다.

성주신, 산신, 지신, 서낭신에게 올리는 굿이 성주굿, 산신굿, 지신굿, 서낭굿이다. 손님굿은 천연두신으로 알려진 마마신을 달래는 굿거리로,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이 물러나기를 기원하는 굿이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깃굿’이다. 선주와 배의 살림을 맡은 화장이 원당 가까이 가서 뱃기를 내밀면 무녀는 뱃기의 선주를 축원하며 쌀점을 쳐서 한 해 동안 배에 모실 배서낭을 점지해 주고 복을 빌어준다. 이를 ‘깃손내림’이라 하여 배를 부리는 이들은 가장 의미 있게 참여하는 굿이다.

원당제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오면서 작은 당산제를 올리고, 마을을 감싼 산을 돌면서 동서편 당산제, 당밥 묻기, 용왕제, 우물굿 등을 진행한다. 이를 주산돌기라고 한다. 이렇게 제의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에서는 띠배를 만든다. 띠배에 태울 허세비(제웅)도 함께 만든다. 허세비는 짚을 엮어 사람 형상으로 만든 것으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그린 한지를 붙여 얼굴을 형상화한다. 동서남북과 중앙 오방의 모든액을 싣고 나가는 허세비는 띠뱃놀이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띠배가 준비되고 주산돌기 (작은 당에 해당하는 마을 여러 곳과 우물들을 돌아오면서 당밥, 한지에 싼 밤·대추·곶감 등)을 묻거나 간단한 음식을 차린 뒤 농악을 울리면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가 끝나면 포구에 마을 주민 모두가 모여 용왕제와 용왕굿을 연다. 오후에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용왕에게 축문을 읽어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빌고, 무녀는 용왕굿으로 마을의 평안을 빌면서 수중고혼이 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한다. 그리고는 콩·밥·뜸부기를 고루 섞어 만든 줄밥(가래밥)을 바다에 뿌려 이들을 고루 풀어먹인다. 원당에서 여러 신령에게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다면 용왕제와 용왕굿에서는 바다의 신을 모시고 수중고혼이 된 이들을 위로한다. 대리마을의 제의는 이처럼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제의가 끝나고 바닷물이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면 띠배를 먼바다로 떠나보낸다. 마을에서 떠난 띠배가 다시 마을로 돌아오면 좋지 않다고 여겨 물의 흐름이 변하는 것을 살펴서 진행한다.


"석금 끝에 가서 인자 바다에다 띠배를 띄우지요.

까딱하면 밀릴 수 있어. 띠배가 가다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이 그해는 젤루 좋다고 그래요."

                       02.원당의 여러 신에게 올리는 제물       03.띠배 안의 허세비들

띠배는 띠로 엮어 만든 배로 그 안에 허세비 다섯이 앉아 있다. 띠배에는 용왕제에 올린 모든 음식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띠배를 먼바다로 끌고 갈 배(모선)에 긴 줄로 연결한다. 모선에는 풍물패가 타서 먼바다까지 신명 나게 잔치를 벌인다. 마을의 액이 띠배를 타고 떠나가니 신명이 나는 것이다. 이때 마을에 있는 여러 척의 어선이 떠나가는 띠배를 호위하여 따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여러 척의 배가 모선을 호위하고 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장관을 보였다고 한다. 마을에서 멀리 벗어나 바다 가운데 이르면 모선과 띠배를 연결한 줄을 풀어 띠배를 떠나보낸다. 띠배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배에서는 풍물을 울리면서 모든 액이 물러나기를, 그리고 각각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모선에서 떠나가는 띠배를 바라보는 것은 여러 가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액이 사라지고 있으니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묘하게 작은 띠배가 나가는 모습은 애잔하고도 서글프다. 이제 저 띠배는 바다 깊이 가라앉을 것이고, 허세비들은 모든 액을 먼바다로 가지고 갈 것이다. 파도 사이로 너울너울 떠내려가는 띠배를 보내면서 위도띠뱃놀이는 끝이 난다. 이제 마을로 돌아와 여럿이 어울려 잔치를 열 때이다. 한 해 동안 잘살아 보자고, 사는 것은 서로 의지하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라고 되뇌는 것이다. 밤에는 모든 제의를 무사히 마친 데 감사하는 도제를 도젯봉에 올라가 지낸다. 이는 산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이렇게 하여 마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사는 것이 고달픈 이들은 띠배를 엮어 모든 액을 바다로 실어 보냈다. 바라는 것이 이뤄지기를 염원하였고 새로운 희망의 길을 찾았다. 해마다 한 번씩 위도에서는 띠배를 떠나보내면서 삶을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걸어갈 기운을 차렸으니, 그 작은 띠배가 지닌 가치가 실로 놀랍다.  글·사진.  홍태한(전북대학교 무형유산정보연구소)
발문 참조. <모든 재앙을 띠배에 띄워 보내지> (국립무형유산원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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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