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순정능

홍·유릉의 특징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조성도 명(明)나라 황제의 예를 참고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 계승하여 조성한 능이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洪陵과裕陵)



사적 홍릉洪陵은 대한제국 1대 황제 고종: 1852~1919과 명성황후민씨 明成皇后 閔氏: 1851~1895의 합장능이다,


고종과 명성황후


조선 26대 왕(1863~1897)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1897~1907)인 고종高宗(1852~1919)은 추존 헌의대원왕(흥선대원군)의 아들로 1863년 신정황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세계 정세에 발맞추고자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 각국과 수교하였고, 근대국가의 체제를 갖추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였다. 1897년 세계열강과 동등한 국격을 갖추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기면서 조선국 이태왕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9년 1월에 죽어 3월 홍릉에 초장봉릉 되었고, 고종의 장례는 3.1운동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에 일제로 부터 주권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대한제국은 엄청난 국가가 되었지않았을까.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1851~1895)는 여성부원군 민치록의 딸로 1866년(고종 3) 왕비로 책봉되었다. 조선을 침략하려는 일본을 견제하려고 하였으나 1895년 8월 궁궐에 난입한 일제의 낭인들에게 시해당하여 같은 해 10월 청량리 홍릉에 장사했다가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왕비를 황후로 추존한 후 황제국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1897년 청량리(현 홍릉수목원 경내)에 만들어졌던 홍릉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현재의 자리로 옮겨 황제릉의 형식을 갖춘 합장릉으로 조성되었다.


사적 유릉은 유릉 (대한제국 2대 순종과 순명황후, 순정황후의 합장능)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純宗(1874~1926, 재위 1907~1910)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로, 1907년 일제의 강압으로 황위에서 물러난 고종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1910년(융희 4) 일제에 의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조선국 이왕이라 불렸다. 1926년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순명황후 민씨明皇后 閔氏(1872~1904)는 여은부원군 민태호의 딸로, 순종이 황위에 오르기 전 황태자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고 1907년 황후로 추존되었다.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1894~1966)는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딸로, 대한제국 최초로 황후로 책봉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겪은 후 창덕궁에서 생활하다가 1966년 세상을 떠났다. 1904년 순명황후(순명비)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무덤인 유강원 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조성하였고, 유강원은 1907년 유릉으로 추봉되었다. 1926년 순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유릉을 현재 위치로 옮겨 합장릉으로 조성하였고, 1966년 순정황후 역시 유릉에 합장하였다.

홍·유릉의 특징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조성도 명(明)나라 황제의 예를 참고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 계승하여 조성한 능이다. 즉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으며, 침전 안에 어탑御榻과 당가唐家를 갖추었다. 양석과 호석 대신 홍살문까지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낙타 말의 순으로 석수를 침전 앞에 배치하였으며, 또 문인석의 금관조복과 무인석의 성장이 강조되었다. 홍릉의 석인은 전통적 수법을 따르고 있는 데 비해, 유릉의 것은 매우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다.

홍릉과 유릉 경내에는 의민황태자(영친왕)과 의민황태자비 영친왕비 이씨의 영원英園, 황세손 이구의 회인원, 고종의 아들 의친왕묘義親王墓, 고종의 딸 덕혜옹주묘德惠翁, 고종의 후궁과 의친왕의 후실들의 묘,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홍릉 비각 洪陵碑閣

홍릉 비문 洪陵碑文
大韓 高宗太皇帝洪陵 明成太皇后被左
대한 고종태황제홍릉 명성태황후부좌



                                                                 유릉 비각碑閣

유릉의 표석은 1966년에 순정황후를 유릉에 합장으로 모신 후,
1968년에 다시 고쳐서 세운 것이다.


                     침전 앞에 배치 되여 있는 석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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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