衣冠整齊(의관정제) 조상들의 의복과 삶에 담긴 의미

衣冠整齊(의관정제) 조상들의 의복과 삶에 담긴 의미

 

의관정제(衣冠整齊).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잘 몰랐다. 이제야 의관정제가 격식에 맞게 ‘옷차림(衣服, 服飾)’을 갖추고, ‘바르게 행동함(操身)’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생의례와 의복. 그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염원과 얼, 정성, 회한(悔恨)이 담겨 있고, 사람 사는 근본을 지키는 삶이 깃들어 있다.

의례와 의복에 담긴 참된 의미

 

의관정제는 이 나라가 동방예의지국으로 지탱해 온 밑거름이었다.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 ‘관혼상제(冠婚喪祭)’라 하여 네 가지 의례를 치렀다. 첫 관문은 열다섯 살 때 치르는 관례(冠禮)로 어른이 되기 위한 의관정제의 첫 의례다. 두 번째는 혼례(婚禮)로 누구나 양반 대접을 받는 일생 최고의 호사 치레였다. 의관은 집안 것을 쓰거나, 없으면 양반 것을 빌려 쓰기도 했다. 세 번째는 상·장례(喪·葬 禮)다. 의복은 두 가지인데, 준비는 자식 몫이었다.

이채 초상(李採 1745-1820)

갓 쓰고 하얀두루마기로 의관정제한 한양사람들

고종황제와 두 딸

지체있는 집안의 마님과 규수의 단아한 모습

 

하나는 죽은 자를 위해 영생불사(永生不死)한다는 저승에서 입을 수의와 쓸 것들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날을 받아 해가 뜨면 시작하고, 해가 지기 전에 마쳤다. 이웃과 친척들이 모두 모여 좋은 옷감들로 옷과 신발, 이부자리 등을 정성 들여 만들었다. 종손부에게 이 물건들은 족보와 함께 ‘재산목록 1호’였다. 다른 한 가지는 죄인 된 자식이 상복을 입고 상례를 주관하는 일이다.

 

상복은 죽은 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마련했다. 자식은 큰 죄인이라 제일 거칠고 성근 석세 삼베로 만들어 3년을 입었다. 스승 상 때도 석 달을 입었다. 네 번째로 3년이 지나면 해마다 제삿날에 천담복(淺淡服)을 입고 제사(祭祀)를 올렸다.

 

만물의 영장, 첫 빔

 

사람이 태어나면 사흗날 아침에 첫 목욕을 시키고, 첫 옷을 입혔다. 옷에는 깃과 섶을 달지 않아 ‘눈·코 없는 옷’이라 불렀고, 옷고름은 오래 살라고 무명실로 달았다. 윗옷 옷감은 겸양과 부귀영화, 무병장수를 이어받고자 조상이 입었던 도포나 적삼 등으로 만들었다. 큰아들, 특히 장손이 입었던 것은 잘 두었다가 전쟁과 재판, 놀음판에도 가져갔다. 아래옷이나 여자 것은 “천한 사람이 된다” 하여 금했다. 한편, 제주에서는 삼베로 옷을 만들었는데 이는 피부병 예방 때문이다. 물이 귀하고, 가난한 섬사람의 처절한 삶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의미 알고 입기를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 일제강점기 끝에 태어난 필자는 전쟁과 정치파동 등 어려운 고비를 겪었다. 과거, 의복은 혼례와 장례 등 중요한 날에 중요한 마음으로 입던 옷이다. 하지만 지금 거리를 거닐면 이 궁(宮), 저 궁 앞에서 전통의상이라며 한복을 입고 거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의 한복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한복이 지닌 참된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깊이 새긴 후 정갈한 마음으로 입는다면 더 좋지 않을까.  글. 고부자 (단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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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