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위엄 속에서 자비를 느끼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자비와 익살스러움 등 다양한 표정이 보인다. 사찰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사천왕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물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위엄 속에서 자비를 느끼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천왕의 어마어마한 크기, 치켜 올린 눈썹, 내려다보는 시선에 담긴 위엄에서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자비와 익살스러움 등 다양한 표정이 보인다. 사찰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사천왕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천왕문 내부 ©필자 촬영

사찰의 구조는 불교의 우주관에 따라 수미산(須彌山)의 구조를 띤다.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이 다스린다는 도리천(忉利天)이 있고, 그 아래는 네 개의 층이 있다고 한다. 그 최하층에 사왕천(四王天)이 있다. 수미산 중턱의 둘레에 동서남북으로 네 봉우리가 있고 사천왕은 봉우리마다 식솔을 거느리고 천궁에 살면서 중생이 사는 사대주(四大洲)를 하나씩 맡아서 수호하고, 불법(佛法)을 지킨다. 사찰에서 사천왕을 상징하는 것이 천왕문이다.


사천왕은 방위에 따라 지국천왕(持國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사천왕의 이름은 맡은 바 특징에 따른 것이다. 조선시대 사천왕상에서는 악귀 외에도 여러 생령이 사천왕의 발에 밟혀 있다. 청나라 만주족, 일본인, 관리, 여인 등 형태가 다양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이 느꼈던 고통과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후기로 가면 관리의 형태가 많아진다. 양반이나 관리의 수탈과 학정이 심해지면서 이들에게 분노하고 벌을 주고 싶은 백성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02.증장천왕 요대 ©필자 촬영  /  03.광목천왕 요대     /   04.광목천왕상 몽구스 

2006년 보물로 지정된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세조 때 처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왼쪽 사진 1). 송광사 천왕문의 입구에서 경내를 향했을 때 오른쪽이 북방 다문천왕과 동방 지국천왕, 왼쪽이 서방 광목천왕과 남방 증장천왕이다. 사천왕은 무인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을 쓰고, 큰 귀를 따라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있다. 또한 공통적으로 얼굴이 네모졌으며, 눈이 툭 불거졌고, 미간의 주름은 진하고, 코는 주먹코에 입은 크다.

사천왕상은 대부분 앉아서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무인상이다. 이때 사천왕이 딛고 있는 대좌는 악귀의 형상을 한 생령좌가 많다. 이 생령좌에는 천인, 인간, 아귀, 축생 등 살아 있는 것이 모두 들어간다. 사천왕이 악귀를 밟고 있는 것은 사천왕이 삿된 것을 제압함과 더불어 사찰을 굳건히 수호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천왕상이 무인상이면서도 이처럼 화려하게 채색된 것은 사천왕이 무섭고 위압적인 존재인 것만이 아니라, 중생을 불법 세계로 인도하는 선신(善神)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북방 다문천왕은 천왕문 입구에서 보았을 때 우측 두 번째에 있다. 시선은 약간 아래쪽을 향하며 입을 조금 벌려 이를 살짝 보인다. 다문천왕의 오른발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상투를 튼 악귀의 등을 밟고 있다. 왼발은 송곳니와 뿔이 난 악귀의 어깨에 걸쳐 있다. 이 악귀의 배 부분에는 천에 감싸져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은 족제빗과인 몽구스로 보배로운 쥐라는 뜻의 보서(寶鼠)라고도 한다. 몽구스는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동물로 티베트 불교에서는 입에서 재물을 토해 낸다는 길상의 동물이다.

동방 지국천왕은 다문천왕과 나란히 앉아 있다. 보관은 세 마리의 봉황이 있고, 그 아래로 구름과 연꽃무늬로 장식했다. 왼손은 허리를 짚고 오른손은 검을 들고 있는데, 위협적이기보다는 호탕한 장군의 모습이다. 지국천왕의 오른발은 사람을 닮은 악귀의 배를 밟고 있다. 악귀의 방울 같은 눈, 지나치게 큰 코와 입은 기괴한 느낌을 주며, 역기를 든 듯 접어 올린 악귀의 팔에는 세 손가락의 손이 붙어 있고, 등에는 작은 날개가 달려 있다. 지국천왕의 왼발은 납작한 모자를 쓴 악귀가 받치고 있다. 이 악귀는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물어 충직한 인상의 얼굴이다.

남방 증장천왕은 동방 지국천왕의 맞은편에 있다. 증장천왕은 비스듬히 내린 시선에 굳게 다문 입이 성난 것도 같고 근엄해 보이기도 한다. 증장천왕은 왼손의 엄지와 중지로 붉은색 여의주를 쥐고 있다. 손에 쥔 여의주가 마치 작은 구슬 같다. 용은 빼앗긴 여의주가 못내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증장천왕의 오른발은 손이 뭉툭하고 송곳니가 튀어나온 악귀의 넓적다리를 밟고 있다. 이 악귀는 상투 모양의 작은 모자를 쓰고 있다. 증장천왕의 왼쪽 다리는 눈이 세 개이고 귀 위에 뿔 난 악귀의 어깨에 얹혀 있다.

서방 광목천왕은 증장천왕의 옆에 있다. 광목천왕의 시선은 바깥쪽을 향하며, 입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벌리고 있다. 광목천왕의 복갑은 일각수의 머리가 거꾸로 달린 형태로 장식됐다(가운데 사진 3). 일반적으로 당과 탑을 함께 지물로 갖지만, 광목천왕은 오른손으로 당을 쥐고 왼손으로 허리를 짚고 있다. 하지만 광목천왕의 왼손을 자세히 보면 작은 동물의 머리 하나가 솟아 있다(오른쪽 사진 4). 거대한 천왕의 기세에 눌린 듯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동물은 몽구스이다.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로 만든 틀 위에 흙을 덧붙여 만든 소조상이다. 이와 같은 대형 소조사천왕상은 임진왜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승병(僧兵)의 본거지였던 사찰은 큰 피해를 보았다. 전쟁 중 보여준 승병의 활약 덕분에 전쟁이 끝난 뒤 억불 정책이 다소 완화되어 사찰이 복원 중수됐다. 그 과정에서 백성들의 염원과 민심을 다스리고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의미를 담은 불사(佛事)가 이루어졌다. 그것이 사천왕상 대형화로 나타났다. 사천왕은 사찰마다 표정, 갑옷 모양, 지물, 장식 등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이제부터 사찰에 가게 되면 사천왕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천의 눈빛을 가진 사천왕상, 그 험상궂음 속에서 따뜻하기도, 짓궂기도, 든든하기도 한 눈빛을 꼭 발견하기 바란다.  글, 사진. 김희진(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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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기자 다른기사보기